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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엠페러 오브 더 무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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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디 엠페러 오브 더 무굴(Mughal-e-Azam)은 1960년에 개봉한 인도의 서사극 영화이다. 무굴 제국의 황제 악바르와 그의 아들 살림의 갈등, 살림과 궁정 무용수 아나르칼리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다. 악바르는 아들 살림이 아나르칼리와 사랑에 빠지자 이를 반대하고, 살림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한다. 결국 아나르칼리는 살림을 살리기 위해 산 채로 매장당하는 형벌을 받는다. 이 영화는 웅장한 세트와 화려한 의상, 음악으로 유명하며, 인도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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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엠페러 오브 더 무굴 - [영화]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프린스 살림이 아나르칼리를 안고 있는 모습이 담긴 연극 포스터
연극 개봉 포스터
감독K. 아시프
제작자K. 아시프
각본아만
카말 암로히
K. 아시프
와자핫 미르자
에산 리즈비
출연프리스비라지 카푸르
딜립 쿠마르
매드후발라
두르가 코테
음악나우샤드
촬영R. D. 마투르
스튜디오스털링 투자 회사
배급사(정보 없음)
개봉일1960년 8월 5일
상영 시간197분
국가인도
언어힌디어
우르두어

2. 줄거리

악바르 무굴 제국 황제는 아들이 없어, 아내 조다바이가 아들을 낳기를 기원하며 사원에 순례를 갔다. 얼마 후, 시녀가 황제에게 아들 탄생 소식을 알렸고, 악바르는 기뻐하며 시녀에게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살림 왕자는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자랐고, 악바르는 아들에게 용기와 규율을 가르치기 위해 전쟁터로 보냈다. 14년 후, 살림은 훌륭한 군인이 되어 돌아와 궁중 무용수 나디라와 사랑에 빠졌다. 나디라는 황제에게 아나르칼리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러나 살림의 사랑을 원했던 무용수 바하르는 이들의 관계를 폭로했다. 살림은 아나르칼리와 결혼을 간청했지만, 악바르는 거절하고 아나르칼리를 가두었다.

살림은 반란을 일으켜 아나르칼리를 구하려 했지만, 전투에서 패배하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아나르칼리는 왕자를 살리기 위해 산 채로 매장되는 형벌을 선택했다. 형벌 전, 아나르칼리는 살림과 시간을 보내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살림에게 약을 먹여 그녀의 매장을 막지 못하게 했다.

아나르칼리가 벽에 갇힐 때, 악바르는 시녀에게 빚을 떠올렸다. 아나르칼리 어머니의 간청에 황제는 마음을 바꾸었지만, 의무 때문에 망설였다. 결국 악바르는 아나르칼리와 어머니를 비밀리에 망명시키고, 살림은 아나르칼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모르게 했다.

3. 등장인물

이 영화는 무굴 제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주요 등장인물과 배역은 아래 표와 같다.

배역배우
악바르 황제프리트비라지 카푸르
살림딜립 쿠마르
아나르칼리마두발라
마리암 우즈 자마니 황후 (조다 바이)두르가 코테
바하르니가르 술타나
두르잔 싱아지트[1]
조각가쿠마르[3]
라자 만 싱무라드[2]
아나르칼리의 어머니질로 바이[3]
하녀비자야락시미[5]
장군S. 나지르[5]
수라이야쉴라 달라야 (일명 쉴라 델라야)[4]
탄센수린더[5]
타와이프조니 워커[5]
어린 살림잘랄 아가[5]
타와이프베이비 타바숨[5]
카탁 무용수고피 크리슈나[5]


3. 1. 주연


  • 프리트비라지 카푸르 - 악바르 황제
  • 딜립 쿠마르 - 살림 역
  • 마두발라 - 아나르칼리 역
  • 두르가 코테 - 마리암 우즈 자마니 황후 (조다 바이) 역
  • 니가르 술타나 - 바하르 역
  • 아지트 - 두르잔 싱 역[1]
  • 쿠마르 - 조각가 역[3]
  • 무라드 - 라자 만 싱 역[2]
  • 질로 바이 - 아나르칼리의 어머니 역[3]
  • 비자야락시미 - 하녀 역[5]
  • S. 나지르 - 장군 역[5]
  • 쉴라 달라야 (일명 쉴라 델라야) - 수라이야 역[4]
  • 수린더 - 탄센 역[5]
  • 조니 워커 - 타와이프 역[5]
  • 잘랄 아가 - 어린 살림 역[5]
  • 베이비 타바숨 - 타와이프 역[5]
  • 고피 크리슈나 - 카탁 무용수 역[5]

3. 2. 조연


  • 아지트 - 두르잔 싱 역[1]
  • 쿠마르 - 조각가 역[3]
  • 무라드 - 라자 만 싱 역[2]
  • 질로 바이 - 아나르칼리의 어머니 역[3]
  • 비자야락시미 - 하녀 역[5]
  • S. 나지르 - 장군 역[5]
  • 쉴라 달라야 (일명 쉴라 델라야) - 수라이야 역[4]
  • 수린더 - 탄센 역[5]
  • 조니 워커 - 타와이프 역[5]
  • 잘랄 아가 - 어린 살림 역[5]
  • 베이비 타바숨 - 타와이프 역[5]
  • 고피 크리슈나 - 카탁 무용수 역[5]

4. 제작

''무굴-에-아잠''의 제작은 1950년대 초에 시작되었으며, 미술 감독 M. K. 사이드의 주도로 화려하게 진행되었다.[12] 무굴 궁전 내부를 재현한 스튜디오 세트에서 주로 촬영되었으며, 분수와 수영장 등 화려한 가구와 물을 이용한 장식들로 당시 할리우드 역사 영화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Pyar Kiya To Darna Kya"는 라호르 요새의 시쉬 마할을 본떠 만든 세트에서 촬영되었다. 이 세트는 길이 약 45.72m, 너비 약 24.38m, 높이 약 10.67m의 거대한 규모였다.[8] 피로자바드의 장인들이 제작한 벨기에 유리로 만든 작은 거울들이 많이 사용되었는데,[19] 이 세트를 짓는 데 2년이 걸렸고, 비용은 150만인도 루피(1960년 기준 약 314,000달러) 이상으로, 당시 힌두 영화 전체 예산을 초과하는 금액이었다. 제작자들은 높은 제작비 때문에 파산을 우려하기도 했다.[12]

인도 전역에서 장인들이 소품 제작에 참여했다. 의상은 마칸랄 앤 컴퍼니가 디자인했으며, 델리의 자르도지 자수 전문가들이 무굴 의상을 제작했다. 신발은 아그라에서 주문했고, 보석은 하이데라바드의 금세공인들이 만들었다. 왕관은 콜라푸르에서 디자인되었고, 라자스탄의 대장장이들이 갑옷(방패, 칼, 창, 단검, 갑옷 포함)을 제작했다. 수라트의 디자이너들도 의상의 자르도지 작업에 참여했다.[12][20] 조다바이가 기도하는 크리슈나 조각상은 금으로 만들어졌고, 갇힌 아나르칼리 장면에서는 마두발라에게 실제 쇠사슬이 채워졌다.[8] 아크바르와 살림 간의 전투 장면에는 인도 육군 자이푸르 기병대 56연대 소속 낙타 2,000마리, 말 400마리, 병사 8,000명이 동원되었다. 딜리프 쿠마르는 라자스탄 사막에서 갑옷을 입고 촬영하면서 겪었던 극심한 더위를 언급했다.[13]

영화는 힌두어, 우르두어, 타밀어, 영어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각 장면은 세 번씩 촬영되었다.[21] 타밀어 더빙판은 1961년에 ''아크바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으나, 상업적 실패로 인해 영어 더빙 계획은 취소되었다.[26][22] 촬영에는 최대 14대의 카메라가 동원되기도 했다.[8] 촬영 감독 R. D. 마투르는 한 장면을 조명하는 데만 8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총 촬영 기간은 500일로, 당시 일반적인 촬영 기간(60~125일)을 훨씬 초과했다.[8] Sheesh Mahal 세트의 조명은 500대 트럭의 헤드라이트와 약 100개의 반사경을 사용했다.[24] 세트의 거울들이 빛을 반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비드 린 감독 등 해외 컨설턴트들은 촬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으나, 아시프는 얇은 왁스 층으로 거울을 덮어 반사율을 낮추는 방법을 찾아냈다.[25][8] 마투르는 천 조각을 사용하여 "바운스 조명"을 구현하여 눈부심을 줄였다.[26]

촬영 중 여러 문제와 제작 지연으로 인해 아시프는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27] 쿠마르는 영화의 방대한 규모를 언급하며 긴 촬영 기간을 옹호했고, 전체 출연진과 제작진은 "그들이 투입해야 할 힘든 일과 그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13]

제작은 재정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 아시프는 여러 차례 예산을 초과했다.[14] 영화의 최종 예산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일부 자료는 1050만인도 루피 (당시 약 225만달러)가 들었다고 주장하는 반면,[28] 다른 자료는 1500만인도 루피 (약 300만달러)가 들었다고 주장한다.[8][44][29][30] 이로 인해 ''무굴-에-아잠''은 당시 가장 비싼 인도 영화가 되었다. 여러 추산에 따르면 이 영화의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예산은 5억인도 루피에서 20억인도 루피에 달한다.

소흐라브 모디의 ''잔시 키 라니''(1953)가 최초의 인도 컬러 영화였으며,[82][32] 1957년까지 컬러 제작이 보편화되었다. 아시프는 "Pyar Kiya To Darna Kya"를 테크니컬러로 촬영하고 결과에 만족하여 이야기의 클라이맥스 부분 세 릴을 추가로 테크니컬러로 촬영했다. 이후 전체를 테크니컬러로 재촬영하려 했으나 자금 제공자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아시프는 ''무굴-에-아잠''을 부분 컬러로 개봉했지만, 여전히 전체 영화를 컬러로 보고 싶어했다.[33] 촬영 종료 후 100만 피트가 넘는 필름이 사용되어 상당한 편집이 필요했다.[8] 상영 시간 때문에 많은 노래가 편집되었고, 최종 상영 시간은 197분이 되었다.[89] 영화를 위해 녹음된 노래의 거의 절반이 최종 버전에서 제외되었다.[25]

4. 1. 기획

우르두 극작가 임티아즈 알리 타지는 1922년에 살림과 아나르칼리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희곡을 썼다.[6] 이 희곡은 사실보다는 16세기 전설에 더 기반을 두고 있었다. 곧 무대 버전이 제작되었고, 영화화도 진행되었다.[6] 아르데시르 이라니는 1928년에 무성 영화 ''아나르칼리''를 만들었고, 1935년에는 유성 영화로 리메이크했다.[6] 1940년대 초, 아나르칼리 이야기는 프로듀서 시라즈 알리 하킴과 젊은 감독 K. 아시프(카리무딘 아시프)가 영화로 각색하는 데 영감을 주었고, 이들은 영화 제목을 ''무굴-에-아잠''으로 정했다.[6]

시나리오와 대본 개발을 위해 아만 (지나트 아만의 아버지, 아만울라 칸으로도 알려짐), 와자하트 미르자, 카말 암로히, 에산 리즈비 등 4명의 우르두 작가가 고용되었다.[6] 2010년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이들의 우르두어 시적 표현과 어법 구사 능력은 모든 대사에 녹아 있으며, 풍부한 플롯과 복잡한 등장인물을 가진 이 영화에 셰익스피어 드라마의 뉘앙스를 부여한다"고 평했다.[7] 시나리오 완성 무렵, 아시프는 찬드라 모한, D. K. 사프루, 나르기스를 각각 악바르, 살림, 아나르칼리 역으로 캐스팅했다.[8] 1946년 봄베이 토키스 스튜디오에서 촬영이 시작되었다.[8]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여러 난관에 직면하여 일시 중단되었다. 1947년 인도의 분할과 독립을 둘러싼 정치적 긴장과 종교적 폭동으로 제작이 중단되었다. 분할 직후, 시라즈 알리는 파키스탄으로 이주하여 아시프는 자금 지원자를 잃게 되었다.[8] 설상가상으로 배우 찬드라 모한이 1949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9] 시라즈 알리는 이전에 사업가 샤푸르지 팔론지를 영화 자금 제공자로 제안했었다. 팔론지는 영화 제작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지만, 1950년에 악바르 황제에 대한 역사적 관심 때문에 영화 자금 제공에 동의했다.[10] 이후 새로운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제작이 재개되었다.[10]

한편, 이 영화가 취소된 것으로 믿었던 각본가 겸 감독 카말 암로히는 같은 주제로 직접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었다. 아시프가 이 사실을 알고 그를 만나자, 암로히는 프로젝트를 보류하기로 했다.[6] 같은 희곡을 바탕으로 한 또 다른 영화 ''아나르칼리''는 난달랄 자스완탈이 제작하고 비나 라이와 프라딥 쿠마르가 주연을 맡았으며, 1953년 힌두 영화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올렸다.[11]

4. 2. 각본

임티아즈 알리 타지ur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각본 작업은 여러 단계를 거쳐 진행되었다.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미술 감독 M. K. 사이드가 맡았으며, 매우 화려하게 제작되었다. 일부 세트를 세우는 데만 6주가 소요되었다.[8] 무굴 궁전 내부를 재현한 스튜디오 세트에서 주로 촬영되었으며, 분수와 수영장 등 화려한 가구와 물을 이용한 장식들로 당시 할리우드 역사 영화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Pyar Kiya To Darna Kya"는 라호르 요새의 시쉬 마할을 본떠 만든 세트에서 촬영되었다. 이 세트는 길이 약 45.72m, 너비 약 24.38m, 높이 약 10.67m의 거대한 규모였다.[8] 피로자바드의 장인들이 제작한 벨기에 유리로 만든 작은 거울들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세트를 짓는 데 2년이 걸렸고, 비용은 150만인도 루피(1960년 기준 약 314000USD) 이상으로, 당시 힌두 영화 전체 예산을 초과하는 금액이었다. 제작자들은 높은 제작비 때문에 파산을 우려하기도 했다.[12]

인도 전역에서 장인들이 소품 제작에 참여했다. 의상은 마칸랄 앤 컴퍼니가 디자인했으며, 델리의 자르도지 자수 전문가들이 무굴 의상을 제작했다. 신발은 아그라에서 주문했고, 보석은 하이데라바드의 금세공인들이 만들었다. 왕관은 콜라푸르에서 디자인되었고, 라자스탄의 대장장이들이 갑옷(방패, 칼, 창, 단검, 갑옷 포함)을 제작했다. 수라트의 디자이너들도 의상의 자르도지 작업에 참여했다.[12][20] 조다바이가 기도하는 크리슈나 조각상은 금으로 만들어졌고, 갇힌 아나르칼리 장면에서는 마두발라에게 실제 쇠사슬이 채워졌다.[8] 아크바르와 살림 간의 전투 장면에는 인도 육군 자이푸르 기병대 56연대 소속 낙타 2,000마리, 말 400마리, 병사 8,000명이 동원되었다. 딜립 쿠마르는 라자스탄 사막에서 갑옷을 입고 촬영하면서 겪었던 극심한 더위를 언급했다.[13]

주요 촬영은 195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12] 영화는 힌두어, 우르두어, 타밀어, 영어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각 장면은 세 번씩 촬영되었다.[21] 타밀어 더빙판은 1961년에 ''아크바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으나, 상업적 실패로 인해 영어 더빙 계획은 취소되었다.[26][22][12]

촬영에는 최대 14대의 카메라가 동원되기도 했다.[8] 촬영 감독 R. D. 마투르는 한 장면을 조명하는 데만 8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총 촬영 기간은 500일로, 당시 일반적인 촬영 기간(60~125일)을 훨씬 초과했다.[8] Sheesh Mahal 세트의 조명은 500대 트럭의 헤드라이트와 약 100개의 반사경을 사용했다.[24] 세트의 거울들이 빛을 반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비드 린 감독 등 해외 컨설턴트들은 촬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으나, 아시프는 얇은 왁스 층으로 거울을 덮어 반사율을 낮추는 방법을 찾아냈다.[25][8] 마투르는 천 조각을 사용하여 "바운스 조명"을 구현하여 눈부심을 줄였다.[26]

촬영 중 여러 문제와 제작 지연으로 인해 아시프는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27] 쿠마르는 영화의 방대한 규모를 언급하며 긴 촬영 기간을 옹호했고, 전체 출연진과 제작진은 "그들이 투입해야 할 힘든 일과 그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13]

제작은 재정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 아시프는 여러 차례 예산을 초과했다.[14] 영화의 최종 예산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일부 자료는 1050만인도 루피 (당시 약 225만달러)가 들었다고 주장하는 반면,[28] 다른 자료는 1500만인도 루피 (약 300만달러)가 들었다고 주장한다.[8][44][29][30] 이로 인해 ''무굴-에-아잠''은 당시 가장 비싼 인도 영화가 되었다. 여러 추산에 따르면 이 영화의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예산은 5억인도 루피에서 20억인도 루피에 달한다. 예산 문제는 아시프와 팔론지의 관계를 악화시켰고, 아시프와 쿠마르 사이의 갈등, 쿠마르와 마두발라의 결별 등 제작진 간의 관계에도 어려움을 겪었다.[14]

소흐라브 모디의 ''잔시 키 라니''(1953)가 최초의 인도 컬러 영화였으며,[82][32] 1957년까지 컬러 제작이 보편화되었다. 아시프는 "Pyar Kiya To Darna Kya"를 테크니컬러로 촬영하고 결과에 만족하여 이야기의 클라이맥스 부분 세 릴을 추가로 테크니컬러로 촬영했다. 이후 전체를 테크니컬러로 재촬영하려 했으나 자금 제공자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아시프는 ''무굴-에-아잠''을 부분 컬러로 개봉했지만, 여전히 전체 영화를 컬러로 보고 싶어했다.[33]

촬영 종료 후 100만 피트가 넘는 필름이 사용되어 상당한 편집이 필요했다.[8] 상영 시간 때문에 많은 노래가 편집되었고, 최종 상영 시간은 197분이 되었다.[89] 영화를 위해 녹음된 노래의 거의 절반이 최종 버전에서 제외되었다.[25]

4. 3. 캐스팅

임티아즈 알리 타지가 1922년에 쓴 우르두 희곡을 바탕으로, 1940년대 초 프로듀서 시라즈 알리 하킴과 신예 감독 K. 아시프는 ''무굴-에-아잠''이라는 영화를 기획했다.[6] 이들은 지나트 아만의 아버지인 아만울라 칸을 포함한 4명의 우르두 작가를 고용하여 시나리오를 개발했다.[7] 시나리오 완성 후, 아시프는 찬드라 모한, D. K. 사프루, 나르기스를 각각 악바르, 살림, 아나르칼리 역으로 캐스팅하고 1946년 봄베이 토키스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시작했다.[8]

그러나 1947년 인도 분할로 인한 정치적 혼란과 시라즈 알리의 파키스탄 이주, 1949년 찬드라 모한의 사망으로 제작이 중단되었다.[8][9] 이후 사업가 샤푸르지 팔론지가 제작비를 지원하면서 1950년에 새로운 캐스팅으로 제작이 재개되었다.[10]

프린스 살림 역을 맡은 배우 딜리프 쿠마르, 1944년 사진


아시프는 처음에 딜리프 쿠마르에게 살림 역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쿠마르는 시대극 출연을 꺼렸지만, 제작자의 설득으로 결국 배역을 수락했다.[12] 그는 라자스탄 촬영 중 더위와 갑옷 착용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13] 아나르칼리 역은 누탄에게 제안되었으나 거절당했고, 수라야도 고려되었지만, 결국 마두발라에게 돌아갔다.[14][15] 선천성 심장 질환을 앓고 있던 마두발라는[44] 촬영 중 어려움을 겪었지만, 영화를 완성하겠다는 의지로 모든 난관을 극복했다.[17]

악바르 역의 프리트비라지 카푸르는 대본과 감독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다고 알려져 있다.[8] 그는 무거운 의상과 맨발 촬영으로 고생했으며, 일부 장면에서는 대사를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8] 두르가 코테는 악바르의 아내 조다바이 역을, 니가르 술타나는 댄서 바하르 역을 맡았다.[18] 잘랄 아가는 어린 살림 왕자 역으로 데뷔했다.[6]

4. 4. 촬영

미술 감독 M. K. 사이드가 주도한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매우 사치스러웠으며, 일부 세트를 세우는 데만 6주가 걸렸다.[12] 무굴 궁전 내부를 재현한 스튜디오 세트에서 주로 촬영되었는데, 분수와 수영장 같은 화려한 가구와 물을 활용한 특징을 갖추어 당시 할리우드 역사 영화의 느낌을 자아냈다.

"Pyar Kiya To Darna Kya"는 라호르 요새의 시쉬 마할을 본떠 만든 세트에서 모한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이 세트는 길이 약 45.72m, 너비 약 24.38m, 높이 약 10.67m로 그 규모가 돋보였다.[8] 특히 피로자바드의 장인들이 제작한 작은 벨기에 유리 거울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세트를 짓는 데 2년이 걸렸고, 비용은 150만인도 루피(1960년 기준 약 314000USD) 이상으로, 당시 힌두 영화 전체 예산을 초과하는 금액이었다.[19] 제작자들은 높은 제작비로 인해 파산을 걱정하기도 했다.[12]

인도 전역에서 장인들이 소품 제작에 참여했다. 의상은 마칸랄 앤 컴퍼니가 디자인했으며,[12] 델리의 자르도지 자수 기술을 가진 재단사들이 무굴 의상을 만들었다. 신발은 아그라에서 주문했고, 보석은 하이데라바드의 금세공인들이 제작했으며, 왕관은 콜라푸르에서, 갑옷(방패, 칼, 창, 단검 포함)은 라자스탄의 대장장이들이 제작했다. 수라트의 디자이너들은 의상의 자르도지 자수를 담당했다.[20] 조다바이가 기도한 크리슈나 조각상은 금으로 만들어졌고, 갇힌 아나르칼리 장면에서는 마두발라에게 실제 쇠사슬이 채워졌다.[8]

아크바르와 살림 간의 전투 장면에는 인도 육군 자이푸르 기병대 56연대 소속 낙타 2,000마리, 말 400마리, 병사 8,000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딜립 쿠마르는 라자스탄 사막에서 갑옷을 입고 촬영하면서 겪었던 극심한 더위를 언급하기도 했다.[13]

4. 5. 후반 작업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미술 감독 M. K. 사이드가 주도했으며, 사치스러웠고 일부 세트를 세우는 데 6주가 걸렸다. 무굴 궁전의 내부를 표현하도록 설계된 스튜디오 세트에서 주로 촬영된 이 영화는 분수와 수영장과 같은 화려한 가구와 물 특징을 갖추어[8] 당시 할리우드 역사 영화의 느낌을 자아냈다. Pyar Kiya To Darna Kya는 라호르 요새의 시쉬 마할을 복제한 세트에서 모한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세트는 길이 약 45.72m, 너비 약 24.38m, 높이 약 10.67m로 그 규모가 주목받았다.[8] 많은 논의가 오갔던 부분은 피로자바드의 장인들이 제작하고 디자인한 벨기에 유리의 작은 거울이 많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19] 이 세트를 짓는 데 2년이 걸렸고 150만인도 루피 이상(1960년 약 314000USD 가치)의 비용이 들었으며,[12] 당시 전체 힌두 영화 예산보다 더 많은 금액이었다. 영화 제작자들은 높은 제작 비용으로 인해 파산을 두려워했다.[12]

인도 전역에서 장인들이 소품을 만들기 위해 모집되었다. 의상은 마칸랄 앤 컴퍼니가 디자인했으며,[12] 델리에 기반을 둔 자르도지 자수 기술을 갖춘 재단사들이 무굴 의상을 바느질했다.[12] 신발은 아그라에서 주문했고, 보석은 하이데라바드의 금세공인이 만들었으며, 왕관은 콜라푸르에서 디자인되었고, 라자스탄의 대장장이는 갑옷(방패, 칼, 창, 단검, 갑옷 포함)을 제작했다. 의상의 자르도지 또한 수라트의 디자이너들이 바느질했다.[12][20] 조다바이가 기도했던 크리슈나의 조각상은 금으로 만들어졌다. 갇힌 아나르칼리 장면에서 진짜 쇠사슬이 마두발라에게 채워졌다.[8] 아크바르와 살림 간의 전투 시퀀스에는 주로 인도 육군의 자이푸르 기병대 56연대 소속 낙타 2,000마리, 말 400마리, 병사 8,000명이 등장했다고 한다.[13] 딜립 쿠마르는 라자스탄 사막에서 갑옷을 완전히 착용한 채 시퀀스를 촬영하는 동안의 강렬한 더위에 대해 이야기했다.[13]

5. 주제 및 분석

مغلِ اعظمfa은 인도 평론가들로부터 만장일치의 찬사를 받았다. 영화의 모든 측면이 칭찬을 받았다.[61][62] 1960년 8월 26일자 ''필름페어'' 리뷰에서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영화... 예술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모인 창의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이라며, "제작자 아시프 씨의 상상력, 노고, 호화로움에 대한 찬사이다. 웅장함,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가들의 연기 면에서 인도 영화의 랜드마크가 되어야 한다"라고 묘사했다.[63] ''인디언 익스프레스''의 리뷰에서는 마두발라의 연기와 춤 "재능"에 초점을 맞췄다.[64]

2000년 이후,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인도 영화 역사상 "고전", "벤치마크", "획기적인 작품" 등으로 묘사했다.[6][13] 2011년, 아누파마 초프라는 이 영화를 "역대 최고의 힌두 영화"이자 "힌두 영화 형식의 정점"이라고 칭하며, 특히 연기, 부자 관계 드라마, 노래 시퀀스를 언급했다.[65] 레디프의 디네쉬 라헤자는 이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할 고전이라고 부르며, "웅장한 궁궐과 분수가 장대한 스케일을 자랑하고, 가슴 아픈 로맨스의 핵심이 깃털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이 역사적인 작품을 묘사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은 예술 작품이다"라고 말했다.[6] ''플래닛 볼리우드''의 수자타 굽타는 이 영화에 별 10개 만점에 9개를 주며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필수 관람 영화"라고 평했다.[66]

K. K. 라이는 ''스타더스트'' 리뷰에서 "مغلِ اعظمfa의 웅장함과 고풍스러운 성격은 반복될 수 없으며, 이 나라에서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영화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말했다.[67] ''더 힌두''의 지야 우스 살람은 مغلِ اعظمfa을 사람들이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싶어할 영화라고 묘사했다.[14] 레디프의 라자 센은 이 영화를 ''스파르타쿠스''(1960)에 비교하며 "مغلِ اعظمfa은 경이롭고, 놀랍도록 압도적이며, CGI나 비선형적인 속임수가 전혀 없는 웅장한 볼거리"라고 말했다.[68] BBC의 로라 부셸은 이 영화에 별 다섯 개 만점에 네 개를 주며, "인도 영화와 일반적인 영화의 웅장함 모두에 대한 벤치마크 영화"라고 평가했다.[69] 영국 영화 협회를 위해 이 영화를 리뷰한 나만 라마찬드란은 종교적 관용의 묘사를 언급하며 이 영화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70]

나스린 문니 카비르는 이 영화를 인도 영화에 지속적인 가치를 지닌 코이노어 다이아몬드에 비유했다.[13] 2008년 ''아웃룩''과 2011년 ''힌두스탄 타임스''는 살림이 아나르칼리를 타조 깃털로 어루만지는 장면이 인도 영화 역사상 가장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장면이라고 선언했다.[15][71]

5. 1. 가족 간의 갈등

살림 왕자는 자라서 제멋대로이고 경솔하며 자기만 아는 아이가 된다. 아버지인 악바르는 그에게 용기와 규율을 가르치기 위해 전쟁터로 보낸다. 14년 후, 살림은 뛰어난 군인으로 돌아와 황제에게 아들의 탄생 소식을 전한 시녀의 딸인 궁정 무용수 나디라와 사랑에 빠진다. 나디라는 황제에 의해 아나르칼리 (석류 꽃)로 개명된다. 질투심 많은 바하르는 더 높은 계급의 무용수였고, 살림 왕자가 그녀를 사랑하여 언젠가 황후가 되기를 원했기에 이 관계를 알게 된다. 살림의 사랑을 얻는 데 실패한 바하르는 살림과 아나르칼리의 금지된 관계를 폭로한다. 살림은 아나르칼리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이를 거부하고 아나르칼리를 감금한다. 아나르칼리는 핍박받는 와중에도 악바르의 요구대로 살림을 거부하지 않는다.[1]

살림은 반란을 일으켜 악바르와 대결하고 아나르칼리를 구출하기 위해 군대를 모은다. 전투에서 패배한 살림은 아버지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지만, 숨어있는 아나르칼리가 그의 대신 죽는다면 사형이 취소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아나르칼리는 왕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내주고 산 채로 매장당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형벌이 집행되기 전, 그녀는 살림과 가짜 부부로서 몇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간청한다. 그녀는 살림이 그녀의 매장을 방해할 수 없도록 약물을 투여하는 데 동의했기에 그녀의 요청은 받아들여진다.[1]

5. 2. 사회적 메시지

영화는 종교적 관용과 신분 제도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무굴 제국의 황제 악바르는 아들을 얻기 위해 힌두교 사원에 순례를 떠나는 등 종교적 화합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왕자 살림과 궁정 무용수 아나르칼리의 사랑은 신분 차이로 인해 비극을 맞는다.

살림은 아나르칼리와 결혼하려 하지만, 악바르는 신분 차이를 이유로 반대하고 아나르칼리를 감금한다. 살림은 이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결국 아나르칼리는 살림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산 채로 매장되는 형벌을 받는다.

악바르는 아나르칼리의 어머니의 간청으로 마음이 바뀌지만, 국가에 대한 의무 때문에 그녀를 풀어주지 못하고 비밀리에 망명시킨다. 이는 당시 사회의 엄격한 신분 제도와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적 억압을 보여준다.

5. 3. 역사적 배경과 고증 오류

이 영화는 무굴 제국 황제 악바르 시대의 전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몇 가지 차이점이 존재한다.

1615년 살림(자한기르)이 라호르에 아나르칼리의 대리석 무덤을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33] 무덤에는 "타 키야마트 슉르 지옴 카르드게이트 카웨쉬 라, 아 가르만 베즈 베나암 루-에 야레 카웨쉬 라"("아! 내 사랑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부활의 날까지 신에게 감사할 것입니다")라는 페르시아어 비문이 새겨져 있다. 역사가들은 아나르칼리가 실제로는 화가, 무용가, 궁녀, 또는 악바르의 아내 중 한 명이자 살림의 이복 형제인 다니얄 왕자의 어머니였을 것으로 추정한다.[33]

악바르의 그림을 들고 있는 자한기르(살림)의 그림
''악바르의 초상화를 든 자한기르'', c. 1614. 자한기르(살림)와 악바르는 영화의 중심 등장인물이다.


하지만 영화는 역사적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 역사가 알렉스 폰 툰젤만에 따르면, 실제 살림은 18세부터 술과 아편을 많이 섭취했고, 영화에서처럼 장난기 많은 소년이 아니었다. 영화 속 살림은 군 복무 후 부드럽고 낭만적인 영웅으로 그려지지만, 실제 살림은 사람을 때려 죽이는 잔혹한 주정뱅이였다.[33] 실제 살림은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켜 황제를 대체하려 했고, 1602년 악바르의 친구 아부 알-파즐을 살해했지만, 영화에서는 이러한 행동이 아나르칼리와 결혼하려는 욕망 때문인 것으로 묘사되어 역사적으로 부정확하다.[33]

영화 속 세트, 의상, 음악에도 역사적 오류가 있다. 실제 여왕의 왕실 목욕탕인 쉬쉬 마할(Sheesh Mahal)은 영화에서 훨씬 더 큰 댄스홀로 묘사되었다. 또한, 16세기가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19세기의 음악과 춤 스타일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개발된 반고전 음악 형태인 툼리(thumri)가 16세기 춤 형태인 카탁 스타일의 댄스 시퀀스에 사용되었다.[33]

6. 음악

나우샤드가 음악 감독을 맡고 샤킬 바다유니가 가사를 쓴 ''무굴-에-아잠''의 사운드트랙은 인도 고전 음악과 민속 음악에서 영감을 받았다. 특히 다르바리, 두르가, 케다르와 같은 라가가 사용되었다.[38][39] 작곡가 나우샤드는 음악에 웅장함을 더하기 위해 서양 고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광범위하게 활용했다.

영화 제작자 아시프는 나우샤드에게 "기억에 남는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며 돈이 든 서류 가방을 건넸다. 돈으로 퀄리티를 얻는다는 생각에 불쾌감을 느낀 나우샤드는 돈을 창밖으로 던졌으나, 그의 아내가 중재하여 아시프가 사과하고 나우샤드가 작곡을 맡게 되었다.[37]

사운드트랙에는 총 12곡이 수록되었으며, 플레이백 싱어와 고전 음악가들이 불렀다. 이 노래들은 영화 상영 시간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7. 마케팅

화가 G. 캄블레는 V. 샨타람의 라즈카말 칼라만디르에서 포스터를 그리도록 유인되었다.[40][41] 캄블레는 또한 마라타 만디르 극장에서 영화 디스플레이를 제작했다.[42] 아시프는 캄블레가 그의 광고를 위해 질 좋은 예술 작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인도에서 구입 가능한 모든 윈저 앤 뉴턴(Winsor & Newton) 페인트 재고를 600000INR에 사들여야 했다.[43] ''무굴-에-아잠(Mughal-e-Azam)'' 스틸 사진 작업으로 800000INR의 거액을 제안받았던 캄블레는 사기 때문에 결국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41]

8. 개봉 및 흥행

''무굴-에-아잠''은 개봉 당시 일반적인 힌두 영화 배급료가 지역당 30만인도 루피~40만인도 루피(1960년 당시 약 6.3만달러~8.4만달러)였으나, 아시프는 배급사들에게 자신의 영화를 지역당 70만인도 루피 미만으로는 팔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이 영화는 실제로 지역당 170만인도 루피(35.6만달러)에 판매되어 당시 힌두 영화 최고 배급료 기록을 세웠다.[67]

시사회는 뭄바이의 마라타 만디르 영화관에서 열렸으며, 영화관 로비는 무굴 궁전처럼 장식되었고, 프리스티라지 카푸르의 약 12.19m짜리 대형 조형물이 세워졌다.[47] 시사회 초대장은 악바르나마와 같은 우르두어로 작성된 두루마리 모양의 "왕실 초대장"이었다.[48] 시사회는 대대적인 언론 보도 속에 진행되었으며, 딜립 쿠마르는 아시프와의 불화로 참석하지 않았다. 영화 필름은 장식된 코끼리 위에 실려 나팔과 ''셰나이'' 음악과 함께 영화관에 도착했다.[13][44]

8. 1. 박스오피스 기록

''무굴-에-아잠''은 개봉 당시 힌두 영화 배급료가 지역당 30만인도 루피~40만인도 루피(1960년 당시 약 6.3만달러~8.4만달러)였던 것에 비해, 아시프는 배급사들에게 자신의 영화를 지역당 70만인도 루피 미만으로는 팔지 않겠다고 고집했다.[67] 이 영화는 실제로 지역당 170만인도 루피(35.6만달러)에 판매되어 당시 힌두 영화가 받은 최고 배급료 기록을 세웠다.[67]

영화 시사회는 뭄바이에 있는 마라타 만디르 영화관에서 열렸는데, 개봉 전날 영화 예매를 위해 10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경찰이 개입해야 할 정도로 혼란을 겪었다.[8] 사람들은 4~5일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고, 가족을 통해 음식을 공급받았다고 한다.[51] 마라타 만디르는 3주 동안 예약을 중단했다.[8]

1960년 8월 5일, 전국 150개 극장에서 개봉하여 힌두 영화 사상 최대 규모의 개봉 기록을 세웠다.[12]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첫 주에 400만인도 루피(83.9만달러)를 벌어들였고,[52][53] 결국 순수익 5500만인도 루피(1153만달러)를 기록했으며, 제작자에게 3000만인도 루피의 이익을 안겨주었다.

''무굴-에-아잠''은 마라타 만디르에서 3년 동안 만석을 기록하며 장기간 상영되었다.[47] 이 영화는 《마더 인디아》(1957)를 뛰어넘어 역대 흥행 힌두 영화가 되었으며, 《숄레이》(1975)가 순수익을 넘어설 때까지 이 기록을 유지했다.[12][44] 총 수입 측면에서, ''무굴-에-아잠''은 1.1억인도 루피(23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54][55]

2009년 《힌두교도》의 지야 우스 살람에 따르면, ''무굴-에-아잠''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역대 흥행 힌두 영화였다.[56] 2008년 1월 온라인 박스 오피스 웹사이트 박스 오피스 인디아에 따르면, 이 영화의 조정 순수익은 13.27억인도 루피에 달하여 "역대 블록버스터"로 랭크되었다.[57] 2017년 6월 박스 오피스 인디아에 따르면, ''무굴-에-아잠''은 《험 아프케 하인 쿤》(1994) 및 《바후발리 2》(2017)와 같은 영화보다 국내 박스 오피스에서 1억 명 이상의 관람객을 기록했을 수 있다.[58] 재정 신문 《민트 (신문)》에 따르면, ''무굴-에-아잠''의 조정 순수익은 2017년 130억인도 루피(2억달러)에 해당한다.[59] 2011년, 박스 오피스 인디아는 가격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여 1.23495조인도 루피의 조정 총수익을 기록하며 역대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힌두 영화로 선정되었다.[60]

8. 2. 평가

''무굴-에-아잠''은 개봉 당시 일반적인 힌두 영화 배급료가 지역당 30만인도 루피~40만인도 루피(1960년 당시 약 6.3만달러~8.4만달러)였던 것에 비해, 아시프는 배급사들에게 자신의 영화를 지역당 70만인도 루피 미만으로는 팔지 않겠다고 고집했다.[67] 이 영화는 실제로 지역당 170만인도 루피(35.6만달러)에 판매되어 당시 힌두 영화 최고 배급료 기록을 세웠다.[67]

개봉 전날, 영화 예매를 위해 10만 명의 인파가 뭄바이의 마라타 만디르 영화관 밖에 모였다.[8] 당시 힌두 영화 중 가장 비쌌던 100루피(1960년 당시 약 21USD)짜리 티켓은 영화에 대한 텍스트, 사진, 퀴즈가 포함된 서류였으며, 현재는 수집품으로 여겨진다.[49][50] 일반 티켓 가격은 1.5루피(0.31USD)였다.[50] 예매는 극심한 혼란을 겪어 경찰의 개입이 필요했고, 사람들은 4~5일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으며, 가족을 통해 집에서 음식을 공급받았다고 한다.[51]

《무굴 제국》은 1960년 8월 5일, 전국 150개 극장에서 개봉하여 힌두 영화 사상 최대 규모의 개봉 기록을 세웠다.[12]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첫 주에 400만인도 루피(83.9만달러)를 벌어들였고,[52][53] 순수익 5500만인도 루피(1153만달러)를 기록하여 제작자에게 3000만인도 루피의 이익을 안겨주었다.[53] 마라타 만디르에서 3년 동안 만석을 기록하며 장기간 상영되었다.[47] 이 영화는 《마더 인디아》(1957)를 뛰어넘어 역대 흥행 힌두 영화가 되었으며, 《숄레이》(1975)가 순수익을 넘어설 때까지 이 기록을 유지했다.[12][44] 총 수입은 1.1억인도 루피(2300만달러)였다.[54][55]

2009년 《힌두교도》의 지야 우스 살람에 따르면, 《무굴 제국》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역대 흥행 힌두 영화였다.[56] 2008년 1월 박스 오피스 인디아는 이 영화의 조정 순수익이 13억 2700만 루피에 달하여 "역대 블록버스터"로 랭크했다.[57] 2017년 6월 박스 오피스 인디아에 따르면, 《무굴 제국》은 《험 아프케 하인 쿤》(1994) 및 《바후발리 2》(2017)보다 국내 박스 오피스에서 1억 명 이상의 관람객을 기록했을 수 있다.[58] 《민트 (신문)》에 따르면, 《무굴 제국》의 조정 순수익은 2017년 130억인도 루피(1.8억달러)에 해당한다.[59]

《무굴-에-아잠》은 1961년 국립 영화상에서 최우수 힌디어 장편 영화상을 수상했다.[72] 1961년 필름페어상에서는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촬영상, 최우수 대사상을 수상했다.[74][75]

부문후보결과
제8회 국립 영화상최우수 힌디어 장편 영화상K. 아시프
제8회 필름페어상최우수 작품상K. 아시프
최우수 감독상K. 아시프
최우수 여우주연상마두발라
최우수 음악 감독상나우샤드
최우수 작사가상샤킬 바다유니 ( "Pyar Kiya To Darna Kya" )
최우수 여성 플레이백 싱어상라타 망게쉬카르 ( "Pyar Kiya To Darna Kya" )
최우수 대사상아만, 와자하트 미르자, 카말 암로히, 에흐산 리즈비
최우수 촬영상R. D. 마투르


9. 컬러 복원판

흑백 영화 장면과 동일 장면의 컬러화 버전 비교
원본(위)과 컬러화 버전 비교


''무굴-에-아잠''은 디지털 컬러화된 최초의 흑백 힌두 영화이자 극장에서 재개봉된 최초의 영화였다.[76] 샤푸르지 팔론지 그룹(Shapoorji Pallonji Group)의 계열사이자 저작권 소유자인 스털링 투자 법인은 ''무굴-에-아잠''의 복원 및 컬러화를 맡았으며, 딥페쉬 살기아(Deepesh Salgia)를 프로젝트 디자이너 겸 감독으로 임명했다.[78]

처음에는 할리우드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1,200만~1,500만 달러에 달하는 높은 견적을 받았다.[76] 2002년, 인도 예술 및 애니메이션 아카데미(IAAA)의 전무이사 우마르 시디키(Umar Siddiqui)는 비용을 대폭 줄여 디지털 방식으로 개선할 것을 제안했다.[76] IAAA는 샤푸르지 팔론지 그룹(Shapoorji Pallonji Group)을 설득하기 위해 4분 분량의 컬러화된 클립을 보여주었고, 승인을 받아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프로듀서 샤푸르지 팔론지 미스트리의 손자인 샤푸르지 미스트리는 영화 전체를 컬러화하려는 할아버지의 꿈을 완성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79]

컬러화의 첫 단계는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 복원이었다. 오리지널 극장 개봉 당시 필름이 광범위하게 인쇄되어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79] 네거티브 필름은 곰팡이를 제거하고 손상된 부분을 복원했으며, 누락된 프레임도 복원했다.[80] 300,000개의 프레임 각각을 10 메가바이트 크기의 파일로 스캔한 후 디지털 방식으로 복원했다.[8] 복원 작업은 첸나이의 아크리스 랩(Acris Lab)에서 수행했다.[81]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의 대화도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미국 체이스 스튜디오(Chace Studio)에서 사운드를 정리해야 했다. 배경 음악과 전체 음악 트랙은 나우샤드(Naushad)와 우탐 싱(Uttam Singh)이 재창조했다.[82] 라타 망게슈카르(Lata Mangeshkar), 바데 굴람 알리 칸(Bade Ghulam Ali Khan), 모하메드 라피(Mohammed Rafi) 등의 오리지널 목소리를 추출하여 6.1 서라운드 사운드로 재녹음된 악보로 재창조했다.[83]

컬러화에 앞서 광범위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미술 부서는 박물관을 방문하여 당시 의상 색상을 조사했고, 시디키는 흑백 할리우드 클래식의 컬러화 기술을 연구했다. 딜립 쿠마르(Dilip Kumar), 프로덕션 디자이너 니틴 찬드라칸트 데사이(Nitin Chandrakant Desai), 자와할랄 네루 대학교(Jawaharlal Nehru University) 역사학자 등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79] 시디키는 컴퓨터 엔지니어와 소프트웨어 전문가 등 약 100명의 팀을 구성했고, 여러 미술 부서를 조직했다. 전체 프로젝트는 딥페쉬 살기아가 조정했으며, 아이리스 인터랙티브(Iris Interactive) 및 라지타루 스튜디오(Rajtaru Studios) 등이 협력했다.[8] 작업은 제작자의 통제와 감독하에 진행되었다.[79]

컬러화 팀은 "이펙트 플러스(Effects Plus)"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18개월을 보냈다. 이 소프트웨어는 오리지널 필름의 회색 음영과 일치하는 색조만 허용하도록 설계되어, 추가된 색상이 실제 색상에 최대한 가깝도록 보장했다.[80] 영화에 사용된 의상을 창고에서 회수하여 색상을 확인한 결과, 컬러링의 정확성이 입증되었다. 모든 샷은 수동으로 수정하여 완벽하게 만들었다.[84] 실제 컬러화 과정은 10개월이 걸렸다.[80] 시디키는 "밤낮으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된 과정이었다"라고 말했다.[85] 컬러화 비용은 2000만인도 루피[85]에서 5000만인도 루피,[30][86] 또는 1억인도 루피로 추정된다.[79]

컬러 버전은 2004년 11월 12일 인도 전역 150개 상영관에서 개봉되었으며, 그중 65개는 마하라슈트라에 있었다. 뭄바이의 에로스 시네마에서 초연되었으며, 딜립 쿠마르도 참석했다. 컬러 버전은 197분에서 177분으로 편집되었고, 나오샤드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디지털 리마스터 사운드트랙이 포함되었다. 디왈리 축제 기간에 개봉된 이 영화는 ''Veer-Zaara'', ''Aitraaz'', ''Naach''와 경쟁했다. 그 해 19번째로 높은 흥행 수익을 올린 힌두어 영화였으며, ''Aitraaz''와 ''Veer-Zaara''에 이어졌지만 ''Naach''보다는 앞섰다.

''Mughal-e-Azam''은 극장 재개봉을 위해 컬러화된 최초의 장편 영화였다. 일부 할리우드 영화가 이전에 컬러화되었지만, 홈 미디어용으로만 제공되었다. 이 영화는 제55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를 포함한 7개의 국제 영화제에 선정되었다. 개봉 당시 극장 점유율은 90%였으며, 25주 동안 상영되었다. 일부 평론가들은 색상이 "환각적"이거나 "부자연스럽다"고 비판했지만, 다른 이들은 기술적 성과라고 칭찬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케빈 토마스는 컬러화가 대부분의 흑백 고전 영화에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지만, 이 경우에는 완벽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영화를 세실 B. 드밀의 영화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에 비교했다. ''가디언''은 새로운 버전이 개선되었지만, "가짜 색상은 평

10. 유산 및 영향

''무굴-에-아잠''은 아시프 감독의 대표작이자 인도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힌두 영화의 전형을 제시하고 이후 인도 영화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영화는 힌두 영화에서 하나의 고유한 용어가 되어, 완료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리는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49] 미술 감독 오뭉 쿠마르는 ''블랙''(2005)과 ''사와리야''(2007) 등의 영화 세트를 디자인하면서 ''무굴-에-아잠''을 영감의 원천으로 꼽았다.[98] 또한 이 영화는 완벽한 러브 스토리의 모델로 사용되어, 감독들은 연인들이 장애물을 극복하도록 해야 한다.[49]

''가디언''(The Guardian)은 역사적 부정확성에도 불구하고 ''무굴-에-아잠''을 "영화의 랜드마크"라고 평가했고,[33] BBC는 이 영화를 "볼리우드의 가장 상징적인 영화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94] ''타임스 오브 인디아''(The Times of India)는 이 영화를 "힌두 영화가 제작한 가장 원형적이고 몰입도가 높으며 비용이 많이 들고 열정적인 작품"이며 "이후에 나올 모든 것의 기준을 세운 작품"이라고 평가했다.[49]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의 인도판으로 간주하며, 수바쉬 가이는 이와 같은 영화는 다시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98]

영화 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샤 루크 칸은 자신의 회사 레드 칠리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제작했다.[100] M. F. 후세인은 비디오를 위해 몇몇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재해석한 그림을 그렸다.[101] 칸은 ''무굴-에-아잠'' 리메이크에 대한 질문에 "모든 영화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리메이크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102][103]

''무굴-에-아잠''은 영국 영화 연구소의 10대 인도 영화 목록,[106] 아누파마 초프라의 최고의 볼리우드 영화 목록,[107] IBN 라이브의 "역대 가장 위대한 인도 영화 100편" 목록에 포함되었다.[108] 로튼 토마토는 91%의 긍정적 평가와 7.9/10의 평균 평점을 부여했다.[109] ''이스턴 아이''(Eastern Eye)는 역대 최고의 볼리우드 영화로 선정했다.[110] 이 영화는 ''운명''(1943), ''마더 인디아''(1957), ''숄레이''(1975), ''험 아프케 하인 코운..!''(1994)와 함께 문화적 중요성을 지닌 전형적인 힌두 영화로 간주된다.

마두발라는 ''무굴-에-아잠''의 성공으로 더 많은 주연 기회를 얻었지만, 심장 질환으로 인해 활동에 제약을 받아야 했다.[6][99]

10. 1. 대중문화에서의 언급

''무굴-에-아잠''은 힌두 영화에서 고유한 용어가 되어, 완료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리는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49] 미술 감독 오뭉 쿠마르는 ''블랙''(2005)과 ''사와리야''(2007) 등의 영화 세트를 디자인하면서 ''무굴-에-아잠''을 영감의 원천으로 꼽았다.[98] 또한 이 영화는 완벽한 러브 스토리의 모델로 사용되어, 감독들은 연인들이 장애물을 극복하도록 해야 한다.[49]

2013년 ''가디언''(The Guardian)은 ''무굴-에-아잠''을 "영화의 랜드마크"라고 평가했고,[33] BBC는 2005년에 이 영화를 "볼리우드의 가장 상징적인 영화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94] 2010년 ''타임스 오브 인디아''(The Times of India)의 임티아즈 알리는 이 영화를 "힌두 영화가 제작한 가장 원형적이고 몰입도가 높으며 비용이 많이 들고 열정적인 작품"이라고 칭하며, "이후에 나올 모든 것의 기준을 세운 작품"이라고 평가했다.[49]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의 인도판으로 간주한다. 수바쉬 가이는 2010년에 이와 같은 영화는 다시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98]

영화 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샤 루크 칸은 레드 칠리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제작했다. 칸이 진행을 맡았으며, 아시프의 가족과 힌두 영화 스타들과의 인터뷰가 포함되었다.[100] M. F. 후세인은 비디오를 위해 몇몇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재해석한 그림을 그렸다.[101] 칸은 ''무굴-에-아잠'' 리메이크에 대한 질문에 "모든 영화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리메이크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102][103] ''만 가예 무굴-에-아잠''(2008)은 제목과 오리지널 연극의 일부를 플롯에 포함시켜 경의를 표했지만, 비평가들로부터 매우 낮은 평가를 받았다.[104] 2016년 10월, 페로즈 아바스 칸은 뭄바이 NCPA 극장에서 영화를 기반으로 한 ''연극''을 초연했다.[105]

''무굴-에-아잠''은 영국 영화 연구소의 2002년 10대 인도 영화 목록,[106] 아누파마 초프라의 2009년 최고의 볼리우드 영화 목록,[107] IBN 라이브의 2013년 "역대 가장 위대한 인도 영화 100편" 목록에 포함되었다.[108] 로튼 토마토는 10명의 평론가를 샘플링하여 91%가 긍정적이고 평균 평점은 7.9/10으로 평가했다.[109] 2013년 7월, 영국 아시아인 주간 신문인 ''이스턴 아이''(Eastern Eye)가 실시한 투표에서 역대 최고의 볼리우드 영화로 선정되었다.[110] 이 영화는 ''운명''(1943), ''마더 인디아''(1957), ''숄레이''(1975), ''험 아프케 하인 코운..!''(1994)와 함께 문화적 중요성을 지닌 전형적인 힌두 영화로 간주된다.

10. 2. 뮤지컬 및 기타 각색

2016년 10월, 프로듀서 페로즈 아바스 칸은 뭄바이의 NCPA 극장에서 70명 이상의 배우와 무용수들이 출연하는 영화 기반의 ''무굴-에-아잠'' 연극을 초연했다.[105] 속편은 제작되지 않았지만, ''만 가예 무굴-에-아잠''(2008)은 제목과 오리지널 연극의 일부를 플롯에 포함시켜 경의를 표했지만, 비평가들로부터 매우 낮은 평가를 받았다.[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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